산불 앞에서 무너진 시스템: 한국 산불 대응 체계, 이대로 괜찮은가?
2025년 봄,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일주일 가까이 이어지며 경북 북부 전역에 걸쳐 산림과 마을, 문화재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피해를 남겼습니다. 이번 산불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우리나라의 산불 대응 체계에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 계기가 되었습니다.
1. 이원화된 지휘체계, 골든타임을 놓치다
현재 한국의 산불 대응 체계는 산림청과 소방청으로 나뉘어 운영됩니다. 산림청은 산불 진화를, 소방청은 민가와 시설물 보호를 맡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이런 이원화된 지휘 체계가 산불과 같은 급박한 재난 상황에서는 오히려 혼선을 키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이번 산불에서는 초기 대응이 늦어져 화재가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진화 지휘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하지 않았고, 지역 단위의 의사 결정 지연은 골든타임을 놓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산불이 여러 지자체에 걸쳐 발생할 경우, 시도지사나 산림청장이 지휘권을 갖게 되는데, 현실에서는 신속한 판단과 효율적인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2. 진화 인력의 고령화와 장비의 한계
또 다른 문제는 산불 진화 인력과 장비의 노후화입니다. 산림청과 소방청이 운영하는 헬기의 대부분은 중소형으로, 대형 산불을 효과적으로 진압하기엔 역부족입니다. 특히 경북 지역의 임차 헬기 중 13대는 기령이 30년을 넘었으며, 심지어 1962년 제작된 헬기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산불 진화에 투입되는 인력 상당수가 60대 이상의 고령자라는 점도 우려스럽습니다. 체력적으로 고된 산불 현장에서 이들의 안전까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1) 노후 장비의 현실
산림청과 소방청이 운용하는 진화 헬기의 대부분은 중소형 기종으로, 물 투하량이 1천~2천700ℓ 수준에 불과합니다. 대형 산불을 효과적으로 제압하려면 최소 5천ℓ 이상의 대형 헬기가 투입되어야 하지만, 경북 지역에서 실제로 이 기준을 충족하는 헬기는 단 3대에 불과합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체의 노후화입니다. 2024년 기준 경북 시군이 임차한 산불 진화 헬기 19대 중 13대가 기령 30년을 초과했으며, 그중 가장 오래된 헬기는 1962년에 제작된 기종입니다. 이러한 노후 기체는 기동성, 안전성 모두에서 신뢰도가 떨어지며, 불시의 고장이나 사고 위험이 높습니다. 이는 산불 진압 현장에서 구조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2) 고령화된 진화 인력
또한, 산불 진화에 투입되는 전문 인력의 고령화 역시 매우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산불 진화 요원의 평균 연령은 60세를 상회하며, 상당수가 65세 이상의 고령자입니다. 고령 인력은 숙련도 면에서는 강점을 가질 수 있으나, 산불 현장은 극도의 체력 소모와 위험을 수반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연령이 높을수록 안전사고의 가능성이 높고 대응 속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2022년과 2023년에 발생한 산불 현장에서 고령 요원이 현장에서 탈진하거나 부상으로 이탈하는 사례가 다수 보고된 바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진화 효율을 떨어뜨리고, 지휘 체계에도 부담을 가중시키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3. 기후변화 시대, 이제는 예방 중심으로
이번 산불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기후변화가 불러온 새로운 현실입니다. 높은 기온, 건조한 날씨, 강풍이 겹쳐 산불이 대형화되고, 확산 속도도 예측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변화에 맞는 대응 전략이 절실합니다.
과거의 조림 정책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경제성을 고려해 심은 소나무 등 잘 타는 수종들이 산불 피해를 키운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기후 회복력을 고려한 수종 선택과 조림 정책이 필요합니다.
4. 선진 기술의 도입과 정보 통합 시스템 구축 필요
대형 헬기 도입과 더불어, 드론, CCTV, 온도 센서, 인공지능 기반의 감시체계 등 최신 기술을 산불 대응에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특히 산불 취약 지역에는 감시용 CCTV와 드론 배치를 확대하고, 기상 정보와 연동된 예측 시스템도 마련해야 합니다.
산불은 이제 더 이상 ‘산 속의 일’이 아닙니다. 마을과 문화재, 사람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현실입니다. 이번에 전소된 천년고찰 고운사, 큰 위협을 받은 세계문화유산 하회마을은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문화재 보호에 있어서도 별도의 방재 매뉴얼과 강화된 예방 시스템이 시급합니다.
5. 산불 대응, 근본부터 다시
전문가들은 현행 산불 대응 체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휘 권한을 소방청 중심으로 일원화하는 방향의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처럼 산림청이 진화를, 소방청이 시설물 보호를 담당하는 이원화된 체계는 급박하게 상황이 변하는 산불 현장에서 신속한 판단과 효율적인 자원 투입을 어렵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산불이 발생했을 때 초기에 어떤 기관이 중심이 되어 작전을 주도할지에 대한 모호한 책임 구조는 골든타임을 놓치는 주된 원인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진화용 헬기나 장비, 인력 동원에 있어서도 각 기관의 역할과 우선순위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중복 투입 또는 자원 낭비가 발생하거나, 반대로 현장 대응이 늦어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재난 대응 전문가들은 산불 발생 즉시 119로 신고가 접수되는 구조에 맞춰, 화재 전문 조직인 소방청이 산불 대응을 전담하고, 산림청은 예방 활동과 피해 복구에 전념하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렇게 되면 지휘 라인이 단순화되고, 명확한 컨트롤 타워를 통해 훨씬 빠르고 통합적인 대응이 가능해집니다.
또한, 산불이 갈수록 대형화되고 예측 불가능해지는 기후 위기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현재의 체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단순한 ‘조직 간 협력’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할 정도로 산불의 양상과 피해 규모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올해 발생한 대형 산불처럼 강풍을 동반한 불씨는 수 km 떨어진 곳으로 확산되며 도심, 문화재, 인명까지 위협하는 새로운 양상의 재난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우리는 단순한 개편이 아닌, 산불 대응 시스템의 ‘전면적인 재설계’, 즉 ‘혁신’이 절실합니다.
- 대형 헬기, 드론, 인공지능 기반 조기 감지 시스템 등 첨단 기술의 도입
- 산불 취약 지역의 선제적 감시 및 통제 체계 구축
- 화재 전문가 중심의 빠른 의사결정 구조
- 문화재나 목조 건축물 보호를 위한 별도 대응 매뉴얼 마련
-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장기적 조림 정책 전환
이제는 ‘화재 진압’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의 복합 재난에 대비한 총체적 산불관리 전략을 고민할 때입니다. 산불은 단지 자연 속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생명, 문화유산, 그리고 다음 세대의 미래와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이제는 변화가 아닌 체계의 전환과 패러다임의 재구성, 곧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